4.벌써 돌아갈 시간...
동이 터 올랐다. 몇 일동안 똑같은 새벽이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보라카이 섬을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라 그런 것 같다. 보라카이에서의 마지막 새벽은 디니위드 비치로의 산책으로 결정했다. 오늘은 구름이 하늘에 낮고 넓게 드리웠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 지 해변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아침 이른 시간은 아직 물이 차지 않아 해변도 넓고 해변길도 걷기에 여유가 있다. 잠깐 걸음에 벌써 화이트 비치 끝의 절벽길을 돌고 있다. 암벽에 뚫린 작은 구멍은 라푸즈-라푸즈에서 보았던 gateway arch의 축소판 같아 보인다.
물이 차있을 때는 알지 못했는데 물이 빠지니 바위에 구멍들이 보인다. 긴 시간 파도나 바람에 깎인 것인 지 사람이 판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해안 절벽의 특이한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해안 절벽을 돌아서자 디니위드 언덕에 있는 나미 리조트가 보인다.
해가 뜨려는 지 아니면 떴는 지 나미 리조트 위의 하늘이 파래졌다. 반대쪽 하늘은 구름들이 모여들고 있다.
디니위드 비치에 우리를 맞이해 주는 건 견공 두마리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데 새벽 해변을 즐기며 쉬고 있는 모습이다.
디니위드 해변 산책길을 걷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아쉬움이 밀려들어 자꾸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멈추게 된다.
비가 조금씩 내려서인지 이른 아침이라 그런 지 화이트 비치엔 사람이 없다. 물이 빠져나가 주름진 모래사장이 드러났다. 먼 바다는 구름이 잔뜩인데 몰려오고 있어 걱정이다. 메인스테이션 쪽에는 하나 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해변 산책을 마치고 리조트로 돌아오니 아직 7시가 안되어 아침 식사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보라카이에서의 마지막 아침식사다. 다시 오면 되긴 하지만 최후의 만찬인 것처럼 느껴진다. 좋을 꿈을 꿀때 깨기 싫은 것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싫어진다.
아쉬운 아침 식사를 마치고 리조트를 돌아보며 쉬다가 체크 아웃을 한 다음 트라이시클에 올라 탐비산으로 향했다. 날씨에 따라 까띠끌란으로 가는 제티가 바뀐다고 하는데 오늘은 탐비산으로 가면 된다고 한다. 남쪽 끝에 탐비산으로 들어가는 언덕을 넘는데 억수같이 비가 쏟아진다. 보라카이도 내가 떠나는 게 싫은 것 처럼 느껴진다. 탐비산 부두로 넘어오니 거짓말같이 비가 그쳤다. 큰 섬도 아닌데 잠깐 언덕 넘어오는 사이에 비가 그치다니.... 부두세 25페소/인, 배삯 25페소/인, 그리고 까띠끌란에서의 트라이시클 80페소를 지불하고 표를 끊어 배로 향했다. 두세명만 타길래 나가는 사람이 없나보다 했는데 5분도 안되어 현지인들로 배가 꽉찬다.
10분 정도 지나니 비맞은 비닐창문 너머로 따반 포트가 보인다.
왔던대로 다시 따반 포트로 돌아왔다. 끊었던 트라이시클 표를 보여주고 까띠끌란 공항으로 향하는 트라이시클에 올랐다.
까띠끌란 공항에 도착해 짐을 붙이고 비행기표를 받았다. 가방무게를 재더니 21kg이라고 돈을 더 내야된다고 한다. 부랴 부랴 짐을 풀어 2kg정도를 덜어내어 배낭으로 옮긴 뒤 짐을 붙였다. 좀 있으니 가방을 들고 수화물 놓는 곳에 올라가 무게를 재라고 한다. 비행기에 싣는 짐과 사람의 무게를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올때와는 다르게 인천까지 짐을 자동으로 실어주기 때문에 마닐라에서 짐을 찾아 다시 체크인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비행기표를 받고 공항세 200페소/인 를 지불하고 출발대합실로 들어갔다. 아침에 비행편이 생각보다는 많다. 앞에 떠나는 비행기를 보니 이제 정말 떠나는 것 같다. 출발순서가 되어 활주로로 나가 비행기에 드디어 몸을 실었다. 문을 닫고 출발 준비를 하는데 앞을보니 20명도 타지 않았다.
마닐라의 NAIA 터미널 3에 도착했는데 짐도 자동 선적되고 까띠끌란에서 인천행 티켓까지 모두 받아서 할게 별로 없다. 3층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구경하다 탑승구로 들어갔다. 역시 탑승 대합실로 들어가기 위해 550페소의 공항세를 내야한다. 공항세를 내고 출입국 심사를 마친 뒤 탑승구로 이동했다. 탑승 대합실 구경을 하러 끝에서 끝으로 걸어보니 탑승 대합실은 긴 복도에 유리벽 하나를 사이로 국제선과 국내선이 갈라진다. 몸에 아직도 바닷물과 모래가 묻어 있는 것 같은데 인천행 비행기에 오르고 아쉽지만 마닐라를 뒤로하고 인천으로 향했다.
보라카이에 있는 동안 너무도 편안한 휴식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무작정 떠나긴 했지만 무한정 좋았던 여행이다. 조금 긴 시간 머물러서 여유가 있어서 그랬는 지 보라카이에서 뭘할까하는 고민없이 발길 닫는대로 해변을 걷고 구경하고 먹고 쉬고 즐기다가 온 것 같다. 당분간은 이 아름다운 해변들이 눈에 아른 거려 힘들 것 같은데 걱정이다. 다시 가더라도 많이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우릴 맞아주길 바라며 보라카이에서의 기억을 머리속에 하나씩 쌓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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